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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음모론

예멘 내전 원인과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

제주도 예멘 난민 수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이 해야 할 도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정도와 상황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실제로 예멘 난민을 만나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예멘이란 나라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안다면 얼마나 잘 아는가?


예멘은 외교부에서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한 나라이다.. 그만큼 위험하고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라이다. 



예멘지역, 사람들의 고대역사 


- 고대에는 사바 왕국이 존재했으며 무역으로 번창하였다고 한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 대륙과의 교통 요지에 있기 때문에 무역으로 최대의 

  꿀자리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위치에 있다 보니 외세의 침략을 많이 격게 된다.. 누구랑 비슷하게 말이다.

  심지어는 유대교국가였는데 이슬람화가 되기까지 한다.

  

- 유대교를 국교로 하는 힘야르 왕국이 세워짐 

-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에 정복 됨 

- 7세기에 이슬람화가 이루어졌으며, 1517년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중 1839년 

  아덴을 노린 영국이 남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분단 시대가 시작. 


  이나라 역시 유럽의 식민지 통치로 인해 개박살이 나는 국가중에 하나다. 






-  1918년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북예멘이 먼저 독립한다


   북예멘은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드파가 많았으며자이드파의 세습 이맘이 사실상의 왕으로 통치하는 왕국이었다.


-  1962년 북예멘은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8년간이나 왕당파와 공화파의


   내전 발발하였고


- 1970년에 이집트의 지원을 받은 공화파가 왕당파를 완전히 축출함하여 공화국이됨. 


   예멘 아랍 공화국이 정식 국가 명칭이다.



이제부터  근대 에멘역사에 중요한 인물이 나오게 된다. 바로 알리 압둘라 살레 (1942~2017)


1977년 당시 북예멘의 대통령이었던 아메드 알가시미(Ahmed bin Hussein al-Ghashmi)에 의해


타이즈군 사령관에 임명됨 


1978년 6월 24일 가시미 대통령이 폭탄 테러로 암살된 이후 살레는 임시 대통령 평의회 의장과 북에멘


군부 최고 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을 겸임하였다.


같은 해 7월, 살레는 북예멘 대통령 겸 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1983년 대통령 겸 최고사령관 재선, 1988년 대통령 겸 최고사령관 삼선에 성공했으며, 1990년 남예멘과 북예멘의 


통일로 예멘 대통령 평의회 의장, 예멘 국방위원회 의장, 예멘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94년 예멘의 초대 대통령


으로 선출되었으며, 1995년 국민전체회의 의장 (여당 지도자) 으로 선출되었다. 1997년, 원수 칭호를 받았으며, 


1999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직접 투표에 의해 처음으로 연임되었다. 



1980년대 살레 대통령 모습


2006년 대통령 선거에도 연임되었으나, 야당 세력은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반정부 활동을 벌였다. 


- 2011년 1월, 튀니지에서 촉발된 아랍의 봄, 혁명의 물결의 영향으로 예멘에도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2011년 내로 대통령에서 물러난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발표와 달리  계속해서 대통령 직을 고수하며, 반체제주의자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었다.


 2011년 6월 반정부 세력의 포격으로 부상을 당해, 다음날 사우디아라비아의 병원으로 실려가기가지 한다.

   ( 2011년 8월 6일 퇴원하였다)


 

-  2011년 6월 4일, 2011년 예멘 봉기 이후 반정부 세력의 대통령궁에 대한 공격으로 알리 압둘라 살레가 부상을 

  입은 뒤,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대통령 권한 대행 수행  (1994년 10월 3일 이래 예멘의 부통령)


- 2011년 6월 4일 부터 9월 23일 사이 전 대통령 살레는 "검찰에서 면책에 대한 대가로" 대통령 업무가

  중지. 하디는 살레를 대신해 대통령 역할을 계속하면서 "국민 화합 정부를 구성하고 또한로부터 

  90 일 이내에 조기 대통령 선거를 요구 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 2012년 2월 선거에서 하디가 단독 후보로 예멘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소속 정당은 국민전체회의)


2015년 1월 22일 후티는 대통령 궁을 장악하고 가택 연금 하였고, 그에 따라 하디 대통령은 사임했다. 

  그러나 한 달 후, 그는 고향인 아덴으로 탈출했고, 그의 사임을 번복하여, 후티 반란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비난했다. 그러나 후티군이 아덴으로 진격하자 2015년 3월 25일 하디는 비밀리에 보트로 예멘을 탈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군이 후티군 점령도시를 탈환하기 시작하고, 지원 폭격 작전을 시작하면서 

  2015년 9월 다시 아덴으로 돌아왔다.

    


- 2017년 후티 반군이 살레를 처형했다. 반군 측은 자신들이 통제하는 ‘알마시라TV’ 등을 통해 이를 공개함...


* 정말 애국심 때문인지 아니면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인지 살레 대통령은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안착되면 

 자신에게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후티 반군과 손을 잡았지만 재기에 실패하고 국제적으로 고립. 

 후티 반군의 최고 적국 사우디에게 화해의 신호를 보내다 후티 반군에 의해 사살당함.





- 한편 남예멘은 영국 통치하에 있다가 1963년에 남아라비아 연방이라는 토후국 연맹으로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며


(아덴은 제외), 수에즈 전쟁으로 아덴항이 큰 타격을 입고 1967년에 소련의 지원하에서 독립하여 공산화되었다.


- 1970년대 국경 문제로 남북간에 무력 분쟁이 잦았으며, 1972년 전면전 발발. 

 

 

 


- 1973년과 1979년에도 전쟁이 발발. 한국으로 치면 한국 전쟁 ,6.25가이 3번  


-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되고 남북 관계가 악화이후 대치 시기. 


- 1990년 5월 이후 글로벌 냉전 종료와 함께 상호 합의 하에 무혈 통일됨. 

 

 


초대 대통령으로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1994년 5월  정부 요직 분배와 관련하여


불만 세력들의 반발로 다시 내전 돌입. 


종교 및 각 부족끼리 쌈박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지역별 감정이 드세긴 해도 종교까지는... 서로 치고받지는


않은게 다행이다... 


말이 무혈이지..  피의 전쟁이 너무나 명확히 예견되는 통일이었음.


내부적으로 계층간, 종교간, 지역간, 부족간...이해관계가 너무 달랐음... 


무엇보다 배후 세력이 너무나 달랐음.. 냉전이 종식되기는 했으나 배후 세력이 미국이냐, 영국이냐, 소련이냐


따라 노선이 명확하게 달랐음...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예멘 군대가 1994년 7월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며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국가가 수립.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2010-2011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살레 대통령이 하야.



2015년 2월, 예멘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후티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예멘 정권을 전복시키면서부터 


다시 내전이 발발.


후티 반군이 예멘 정부를 전복시키자 당시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은 사우디에 도움을 요청했고,


사우디 정부가 시아파 후티 반군의 배후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있다고 판단, 15만 대군의 중동연합군 


구성해 예멘 내전에 개입하면서 현재 아비규환이 시작됐다. 


이와중에 살레 대통령도 사망하고 끊임 없는 피바람이....



예멘의 지속적인 내전의 원인은


1.  다른 부족간 억지로 통일을 한것이 원인이다.

  - 중동, 특히 예멘 지역의 다양한 부족들은 각자의 이익에 의해서 움직인다. 

    위에서 잠깐만 봐도 알겠지만 자신의 이권에 부합되지 않으면 그냥 총쏘고 본다.


2. 너무 오랫동안 다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같은 조국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3.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어느정도를 넘었다... 인구의 30%가 내전으로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용서하기 너무 힘들다. 


4. 주변에서 말릴 의지가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나 영국이나 자기 이권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열심히 싸우니까 무기 시험도 하고 재고로 쌓여 있는 무기도 팔아먹구...


   > 오히려 전쟁이 반가울지도... 설마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이게 예멘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한국과 북한이 통일이 된다면?


1. 지금 대한민국의 내분은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 무지 심하다. 이들이 각각의 정당을 만들고

   세력을 만들지 말란 법이없다.

 

  -  부자 증세를 통해 가난한 인민에게 나눠준다라는 것을 흔히 이야기 하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얼마나 수용할까? 

     여기서 중산층이란 어렵게 집을 한채 자기이름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  어렵다고는 하지만 열심히 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등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믿고 있는

     급여 생활자들... 이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돈들이 북한의 취약계층의 교육과 환경개선금으로

     사용된다면?

   


2. 정말 북한을 우리 동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반대로 북한이 우리를 동포라고 생각하는지 ?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를 바라 본 적있는가? 


   엄청 배고프고 춥게 살고 있는데 잘사는 사촌형이 있다.. 그 사촌형이 어떻게 보이는가?


   너무 오래 동안 남으로 살았다...  이걸 극복할 방법은 없다. 

 

   같이 노래부르고 공연하고  축구 몇번 한다고 가족이 되나? 

 


3. 여전히 기득권 정치권의 목표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일 뿐... 

   

   민족과 나라를 걱정하는 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 지금 북한 탈북자도 눈치보면서 안받아 주는게 현실이다



통일이 된다면 뭐가 좋아지는가?


대한민국만 좋아서는 안된다. 북한도 좋아져야만 한다. 그럴려면 대한민국이 나눌 준비, 고통 분담의 


자세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로 보면 절대 그렇게 될일은 없을 것 같다. 

 

민중은 그렇게 되면 좋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자기 지갑에서 돈이 나가거나 자신의 복지가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면 대단히 분노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이 된다 해도 오히려 남북간 반목이 심해지고 결국은 예멘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통일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과거 동독과 서독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느날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저 버린..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그들과 우리의 상황은 대단히 다르다.  무엇보다 통일의 주체가 민중이었다.

 

독일의 통일과정 요약


1989년 5월 2일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을 철거한 일을 계기로 동독 여행자들이

서독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헝가리, 체코, 폴란드 주재 서독대사관과 동베를린 주재 상주대표부에 동독 탈주민들이 쇄도했다.

1989년 9월 10일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고 동독 주민의 출국 여행을 허용함으로써

9월 말까지 3만 명 이상이 서독으로 탈출하였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주요 분야의 인력들이 서독으로 이주함으로써 동독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었다

  

정치권에서 시작한게 아니라 민중들의 탈출에서 시작이 되었고

이후 동독에서 끊임없는 반정부 시위에 의해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뤄진것이다.


 

통일 이후 대단히 힘든 시기를 겪었은건 당연한 일이고...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2번의 세계대전을 패배하고도 일어선 독일인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예멘 난민 수용에 대해서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답을 못 찾고 있는 것 같다. 


현재까지 수많은 나라가 공식적으로 우리 난민 받아요!! 이렇게 이야기 한나라를 본적이 없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우리 안받으니까.. 니들이 받아... 이런식이다.



전세계 난민 6560만명이다... 이번에 중동에서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을 받아 준다면 


전세계 난민의 1%는 죽어라 한국으로 올것이다. 65만 명이다.. 감당이 되겠는가?

 

 


 

누구는 받고 누구는 안받을것인가?


지금 당장 멀리 떨어진 예멘이 문제가 아니고 미얀마 로힝야족 사태는 바로 옆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난민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못하는 상황이다..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제 정세를 아는 사람이면 쉽게 알겠지만 난민의 수는 결코 줄지 않는다.

 

지금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중국에서 발생되는 난민의 수 또한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난민이 된다면 받아줄 나라가 있을 것 같은가? 


방탄소년단이라면 모를까? 대부분 거절된다. 




 

예멘 내전에 관련된 사람, 단체, 국가


- 후티 반군


후티(아랍어: الحوثيون)는 예멘의 이슬람 자이디야 시아파 무장 단체이다.


2004년 지도자 후세인 알후티가 정부군에 사살된 이후 예멘 정부와 내전이 진행 중이며, 2015년 1월 대통령궁을 장악하여 후티 반란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이 남부지역으로 도피하고 옛 남예멘 지역의 지방정부들이 후티를 따르기를 거부하자 예멘 전체를 놓고 내전이 진행 중이다. 이란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후티를 반군으로 본다.

 

 

 


후티는 1990년대 시아파 종교-정치 운동으로 시작. 미국과 사우디 등 외세 영향력이 확대되자 이에 반발해 무장세력으로 전환. 살레 전 대통령 지지세력의 도움을 받으며 2014년 수도 사나까지 세력 급격히 확장.

그러나 살레가 배신(?) 하자 가차없이 죽여 버렸다는....



- 사우디

시아파 후티의 정권 장악을 막기 위해 아랍연합군을 이끌며 후티 반군 장악 지역에 맹 공습.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예멘 내전 개입을 주도했지만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평가. 후티 반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한 채 민간인 피해만 급증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음.


- 이란

시아파 이슬람권 세력 확대를 목적으로 후티 반군 지원. 후티 주요 인사 1,600여명이 이란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짐. 후티 반군 측에 군사 고문단 파견 및 무기 공급.



- 알카에다

아랍의 봄으로 예멘 정세가 불안해지자 예멘 남부 다수의 도시 점령하며 세력 대폭 확장함.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왔으나 미군의 격퇴전으로 영향력 축소 중.


- UAE

하디 정부 지지. 예멘 재건을 위한 경제 파트너 역할에 주력. 예멘 지방 부족 세력을 지원하며 알카에다 퇴치 작전에 참여.


- 수단

사우디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지상전을 참여하지 않는 사우디군 대신 지상전 수행. 자세한 파병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음.


- 이집트

사우디 요청으로 지상군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집트 정부는 강하게 부인.


- 예멘 남부 분리주의 세력

사우디 주도 아랍연합군 지지하고 있으며 하디 정부 편에 있다고 볼수 있으나 하디측과도 잦은 불협화음.


- 각 지역별 부족세력

철저히 이권에 따라 행동. 하디 지지 부족과 후티 지지 부족으로 사분오열. 알카에다와 교전.


- 영국과 러시아


영국은 사우디에 러시아는 이란 상대로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음.

예멘 내전의 가장 큰 수혜 국가 중 하나.

 

- 미국

예멘 남부에서 알카에다 퇴치 작전 수행 중. 후티 반군과 직접 교전하지는 않으나 사우디에 엄청난 규모의 무기 판매. 사우디에 군사 자문과 군사정보 제공.

 



그리고 지금도 내전이 끝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랍의 봄 :

 

2010년 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촉발된 유례 없는 반정부 시위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정부ㆍ민주화 시위는 집권세력의 부패, 빈부 격차, 청년 실업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분노 등이 원인이 돼 아랍 전역으로 확산됐다. 

 

 


2010년 말 시작된 튀니지의 반정부 시위는 2011년 1월 재스민혁명으로 번졌고, 이집트는 2월 코사리혁명으로

각각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또 리비아에서는 10월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가 사망하면서 42년간 계속된 독재정치가 막을 내렸다. 예멘의 경우 2011년 11월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대통령이 권력이양안에 서명함에 따라

33년간계속돼 온 철권통치가 종식됐다.  

 

 

 

그러나...  훗날 어떻게 평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민주화는 커녕 인권은 더 박살이 났고 

사람들의 삶은 개판보다 못한 수준으로 됨...

 

아직도 끊이없는 크고작은 내전들로 인해 경제는 망가지고 국가의 기본적인 사법체계가

망가지고 이를 아무도 지키지 않기 때문에....

 

* 미얀마의 로힝야족 박해(Rohingya persecution in Myanmar)는 2016년 10월 6일부터 진행 중인

미얀마 내 이슬람교 계열의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군의 반인륜적 탄압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2017년 2월 보고서에서 미얀마군이 로힝야족을 상대로 다중(多衆) 살인과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면서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매우 근접한 수준이라고 지적하였다. 

2017년 9월 6일 유엔 난민 기구(UNHCR)는 미얀마 정부군의 학살 행위에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족 난민이 15만명에 육박했다고 밝혔다.